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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관리자 2009-06-29 09:52:59 | 조회 : 2963
제      목  위그든씨의 사탕가게 중 "이해의 선물"
내 어린 시절의 추억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위그든씨의 사탕가게에 관한 추억이다.
내가 처음 그 가게에 들렀을 때가 네살 무렵이었으니 벌써 반세기가 지났건만 나는
아직도 그 가게의 사탕향기를 기억한다.
그 당시 우리집은 시애틀 레버나 공원의 전차 역에서 2백미터 정도 떨어진 대학로에
있었는데, 전차 정류장을 오가는 길가에 그 사탕가게가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볼 일을 보러 시내에 나를 데리고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위그든씨의 사탕가게에 들렀다.
"오늘 착하게 잘 따라다녔으니 맛있는 거 사줄께."
어머니는 긴 유리 진열장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현관 출입문에 달린 작은 종이 땡그랑 울릴 때마다 위그든 할아버지는 조용히 나타나
사탕 진열대 뒤에 서 계셨다. 커튼 뒤에서 나오는 할아버지는 연세가 아주 많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눈앞에 펼쳐진
진열대를 바라보았다.
그처럼 달콤한 유혹은 없었다.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 사탕을 고르고
저 사탕을 포기해야 하는 사실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사탕의 맛을 가늠해보면서 하나씩 훑어보았다. 한 종류를 골라 종이
봉지에 담을 때마다 다른 사탕이 더 맛있지 않을까 하며 갈등했다. 위그든씨는 내가
고른 사탕을 다른 사탕으로 바꿀지 몰라서 눈을 껌벅이며 잠시 기다렸다가 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사탕을 한 숟가락씩 떠서 봉지에 담았다.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몇 개를 더 고르셨다. 계산대에서 돈을 지불하자 봉지는
노끈으로 묶였다. 이제 다른 사탕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시내에 나가셨다. 그 당시에는 우리 집뿐만이 아니라
다른 집에서도 아이를 돌보는 보모를 따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늘 어머니를
따라 다녔다. 시내에 나가는 동안 내가 말썽을 피우지 않고 얌전하게 있으면 어머니는
상으로 나를 사탕가게에 데려갔다. 나는 그 상을 받으려고 될 수 있는 대로 얌전하게
어머니를 따라다녔고 시내에 나갈때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듯이 사탕가
게에 들락거렸다. 처음 사탕가게에 갔을 때부터 어머니는 언제나 사탕은 내가 직접
고르게 하셨다.
당시 너무 어렸던 나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돈이라고는 부모님이나 부모님의
친구 분들이 저금통에 넣으라고 주신 동전이 전부였다. 나는 어머니가 가게의 계산대
에서 반짝이는 동전을 주고 물건 담은 봉지를 건네받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서로
어떤 것을 교환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전차정류장 쪽으로 1백5십미터
정도 떨어진 위그든씨의 사탕가게를 혼자서 다녀오기로 한것이다,. 혼자 다닐만큼
컸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주머니 사정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주머니 사정이 겁나지
않은 나이였다. 사탕 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화창하 어느 날 오후 드디어 나는 혼자서 거리를 따라 사탕가게를 찾아 나섰다.
온 힘을 다해 커다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땡그랑 울리던 작은 종소리를 기억한다.
위그든씨가 커튼 뒤에서 나오면서 웃음지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사탕 먹을 생각에 마음이 들떳지만 태연한 척 사탕이 있는 진열대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앞줄에는 갖가지 향의 박하사탕이 있었고 뒤쪽에는 깨물면 부서지면서 입 안이 상큼해
지는 드롭스가 있었다. 다음 칸에은 작은 초콜릿 캔디 바가 있었고 그 상자 뒤에는
입에 넣으면 볼이 툭 불거져 나올 만큼 큰 눈갈사탕이 있었다. 나는 이 눈깔사탕이
제일 좋았다. 녹이지 않고 그냥 입에 넣고 있으면 오후가 즐거웠다. 뿐만 아니라
알록달록한 눈깔사탕은 마치 벗겨내도 다시 다른 껍질이 이어서 나오는 양파처럼
녹여 먹을수록 연이어 다른 색깔이 층층히 나타나 신기했다. 한참 입 안에서 녹이다
어떤 색깔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재밋었다. 사탕을 입에 넣고 녹여 먹다보면 마지막
사탕의 한가운데 호도나 땅콩,코코넛 같은 나무 열매가 들어 있기도 했다.
흑설탕과 땅콩가루를 섞어서 만든 땅콩과자도 있었는데 작은 나무 숟가락으로 두
숟가락에 15센트였다. 목에 걸어도 될 만큼 긴 줄 사탕은 하나씩 떼어 먹게끔 되어
있었다. 진열대를 반쯤 지나자 이미 종이 봉지는 골라 담은 사탕으로 그득했다.
위그든씨는 허리를 굽혀 진열대 너머로 나를 내려다 보면서 물었다.
"이것을 다 살 돈은 있니?"
나는 대답했다.
"그럼요, 돈 많아요."
나는 주먹을 펴서 위그든씨의 손에 은박지로 잘 싼 체리 씨 여섯개를 올려놓았다.
위그든씨는 자기의 손바닥을 바라보더니 한참 동안 조심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불안해서 여쭈었다.
"모자라나요?"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한숨을 쉬고는 대답하셨다.
"아니다. 돈이 조금 남는구나. 거스름돈을 내주마."
할아버지는 계산대 뒤쪽에 있는 서랍을 열고 1센트짜리 동전 두개를 내 손에 올려
뫃은 후 사탕봉지를 건네주면서 말씀하셨다.
"한꺼번에 다 먹으면 안된다. 배탈이 나고 이가 썩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어머니는 내가 혼자 밖에 다녀온 것을 알고는 다시는 허락 없이 혼자 다니지 말라고
꾸중하셨지만 사탕에 대해서는 별 다른 말씀이 없었다. 돈이 어디서 나서 사탕을
샀는지 묻지 않앗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그 이후 체리 씨로 사탕을 산 기억이
없는 것으로 봐서 다음에는 허락을 받고 동전을 얻어서 사탕가게에 갔던 것 같다.
그 일이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고 곧 잊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어떤 계기로 그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고 그 일의
여파가 내 삶속으로 밀려왔다.

나는 결혼하여 사내아이 둘을 키우며 아내 거투르드와 함께 열대어 가게를 운영했다.
가게에는 열대어를 부화시키고 기르는 부화장도 같이 있었다. 그 당시 관상용 열대어
판매업은 시작 단계여서 대부분의 열대어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직수입
했다 한 쌍에 5달러 이하는 거의 없었고 비싼 것은 한마리에 2백50달러가 넘는 것도
있었다. 가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집이 곧 가게여서 거실에 어항을 두 줄로
진열해 놓았다.
어느 화창한 오후 나는 거투르트와 바쁘게 부화장의 어항을 청소하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땡그랑 하는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꼬마 아이 둘이 들어왓다.
여섯 살 정도 된 여자아이와 다섯 살 정도 된 남자아이였다. 여자아이가 물었다.
"예쁜 물고기 파는 곳이죠?"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꼬마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좀 보여주세요."
나는 두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은 어항 청소를 하느라 무척 바쁘단다. 나중에 오지 않겠니?"
여자아이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쳤다. 여자아이가 말했다.
"우린 멀리서 왔어요."
내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데?"
"넬슨 가에서요"
넬슨 가는 우리 집에서 대략3백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3백미터 정도면 이 꼬마들에게는 꽤 먼 거리일 수도 있다.
"그래, 그러면 이리 와서 보렴."
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정 같은 맑은 물에서 헤엄치는 보석 같은 열대어를
바라보았다. 사내아이가 소리쳤다.
"와아!예쁘다. 몇 마리 살 수 있지요?"
"물론 살 수 있지. 그런데 아주 비싸단다."
여자아이가 말했다
"돈 많아요. 아빠가 생일 선물로 줬어요."
아직 어려서 잘 모르면서 갖는 확신에 찬 아이의 목소리에 어떤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때 다른 곳에서 이와 똑같은 장면을 본 것 같은 약간 섬뜩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갖고 싶은 물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순간 다시 아주 강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어항이 놓인 거실을 따라 얼굴에 어항을 가까이 대고 발걸음을 옮기면서
몇 가지 다른 물고기들을 골랐다.나는 아이들이 고른 물고기를 작은 뜰채로 건져서
휴대용 비닐 봉지에 담아주며 말했다.
"얘들아, 물고기 아주 조심해서 가져가야 한다."
사내아이가 봉지를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누나, 돈 드려."
내가 여자아이에게 손을 내밀자 아이는 움켜쥔 주먹을 폈다.
그순간 분명하게 친근한 느낌의 정체를 알았다.위그든씨의 사탕가게에서 맡았던
사탕향기- 그 향기가 향수가 되어 내 콧잔등을 스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여자아이에게 어떻게 할지, 무슨 말을 할지 정확히 알았다.
아이는 내 손바닥에 5센트짜리 동전 두개와 10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올려 놓았다.
그 순간 아주 오래전 위그든씨가 내게 해주었던 일이 어떤것이었는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내가 위그든씨에게 던졌던 도전이 무었이었고 그것을 그분이 얼마나
지혜롭게 받아 들였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다시 한번 위그든씨가 바라보던 눈빛을
의식하며 작은 사탕가게에 서 있는것 같았다.
손에 놓인 동전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동전이 아니라 옛날 내가 은박지로 잘 쌌던
체리 씨였다. 나는 두 아이의 순진무구함과 그것을 지켜줄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는 어떤 힘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위그든씨에 대한 추억으로 목이 메었다.
내가 잠시 상념에 빠져있자 여자아이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조그맣게 물었다.
"돈이 모자라나요?"
나는 침을 삼키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아니, 조금 남는걸. 거스름돈을 주마."
나는 아이의 손에 1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물고기가 든 비닐봉투를 가지고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눈이 시려왔다.
방 안에 들어오자 아내 거투르드가 어항 안에 있는 식물을 정리하느라 팔꿈치까지
물속에 담근 채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녀가 따지듯 물었다.
"당신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몇마리나 주었는지 알아요?"
나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대략 30달러쯤 되지. 그러나 달리 어쩔 수가 없었어."
내가 위그든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내도 눈시울을 붉히며 내 뺨에 부드럽게
입맞추었다.
"나는 아직도 위그든씨 사탕가게의 박하사탕 향기를 맡을 수 있어."
남은 어항을 닦으려고 어깨를 돌리는 순간 위그든씨의 너털 웃음 소리가 들렸다.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종이인형'과 비교하며 옮겨 적을 때
다시 읽어보니 작은 감동이 오더군요...
단순 비교 하기는 어렵지만 (상황도 많이 틀리고요) 위그든 할아버지의 따듯한
마음이 반세기가 지나 전달이 되고 이해가 된것 같아요
저 여자아이도 커서 열대어 가게 주인을 기억 할지도 모르죠
비록 돈 받고 일하는 업종이지만 따듯한 마음도 같이 전해 드릴 수 있는
저희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김재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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